사피엔스(유발 하라리)

사피엔스(유발 하라리) 후기

kos9 2025. 9. 5. 10:29

 이과적 공부만 하면,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 같아서 문과적 공부도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에 30분씩 읽었다. 아침에 도서관에 오면 바로 공부를 시작하기가 싫은데,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으면 워밍업도 되고 좋았다.

 

 오래 전부터 인간으로서의 특권의식적 사고를 배제하고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고민을 한참 하던 중 나름 결론을 내렸었다. '인간도 특이할 거 없는 하나의 동물일 뿐이다.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큰 의미가 없고 그냥 내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나고 죽는 자연의 일부일 뿐이다.' 이 생각을 하니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자유를 조금 향유하다보니 더 근본적인 날것의 진실을 갈구하게 되었다. 유명하다는 책들을 둘러보던 중, '사피엔스'라는 제목이 내 갈증을 해소시켜주겠다고 스스로를 강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유명하고 유행한다는 책들을 보면 '행복' , '삶의 의미' 등에 초점을 맞춘 '이쁘고 감성적인' 제목의 책들이 많았는데, '사피엔스'라는 제목은 '의미 없음'을 강하게 드러내는 것 같았고, '날것의 진실'을 여실히 보여주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선택했다.

 

 1. 인지혁명 :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 때문에 인지혁명이 일어났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옮긴이는 얘기하지만, 나는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빅테크 ceo들도 일반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이해되지 않는 돌연변이 적인 면모를 많이 보인다. 그런 측면에서 인지혁명도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2. 농업혁명 : 농업혁명부터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정말 공감한 것은, '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긴 했지만, 행복하게 만들어주진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행복이 삶의 궁극적 목표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저 위의 구절에 공감을 많이 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았다. 수렵채집인은 농업혁명이후의 농부들보다 더 행복했을지언정, 불안함을 디폴트로 가지고 살았을 것이다. 이 불안함은 생존과 직결된 불안함이라 농업인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일부 무리들은 그 (생존과 직결된)불안함에 이골이 난 상태와 일상에서 자잘하게 지속된 불편함이 더해져, 농업혁명을 일으켰다. 실제로 농업혁명 이후에 야생의 동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불안함이 찾아왔다. 또한, 농업혁명 이후부터는 생존과 직결된 불편함은 해소했을 지언정 권력관계에 따른 불안함/불편함이 생겼다. 거기에 또다른 일상적 불편함들이 생겼다. 이후 혁명들도 이들을 해소하기 위해 나타났다. 하지만 새로운 혁명 뒤엔 그에 맞춘 '새로운 불안함과 일상적 불편함들'이 생긴다. 이 '새로운 불안함과 일상적 불편함들'은 대개 인간사이의 권력관계에 의한 것이다. 혁명을 주도한 사피엔스들, 새로운 틀에 맞는 유전자를 가진 사피엔스들은 대개 그렇지 않은 사피엔스들보다 더 편하게 살아간다. (권력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아니고, 권력관계에서 불리한 위치를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인간사가 흘러온 것이 아닐까 하는 현상에 대한 분석을 한 것이다. 감정 및 이념은 들어가지 않았다.) 

 

 3. 인류의 통합 : 돈,제국,종교 등에 대해 읽으면서 느낀 점은, 내가 진리/정답/당연하다 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상은 하나의 '상상의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돈'은 너무나 당연하고 절대적이게 느껴지지만, 돈을 지탱하는 '이야기'들이 무너지면 돈도 자연스레 무너진다. 요즘 '스테이블코인' 등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금융의 형태가 나오면서 혼란스러웠는데 이러한 상황을 좀 더 냉철하고 분석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제국'에 대한 이전의 인식은 부정적인 것들이었다. '대일본제국', '나치제국' 등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박힌 탓일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역사는 현재 내가 살고있는 국가체제들보다 더 오래되었고, 그리 오래 지속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패권국/강대국 들의 모습도 겉으로는 아닐지라도 깊게 들여다보면 제국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다. '오늘날의 문화 대부분은 제국의 유산을 기초로 하고 있다.'라는 말에 큰 임팩트를 받았다.

 사실 '종교'는 크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왔다. 아마 과학적 관점만 너무 맹신한 탓일 것이다. 하지만, 유명한 과학자들은 대부분 신의 존재를 믿고 종교가 있다고 한다.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요즘에서야 그 이유를 점점 더 선명하게 알게 된다. 아직 많이 부족하겠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아는게 많아 질수록, 인간의 용량(어느 용량이든)은 한계가 정해져 있으며 신의 영역에 이르기에는 주어진 시간이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을 과학/진리만 추구하며 사는 삶은 한 인간이 버텨내기에 참으로 버겁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이 현생을 정말 힘들게 산 이유도 이와 관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종교는 한 인간의 일생을 조금 더 온화하고 풍요롭게 해주는 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과학이 발달하기 이전의 시대는 그 효과가 더 컸으리라. 그래서 종교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가 그리 오래 지속되어왔을 것이다.

 

 4. 과학혁명 : 이 장에서 느낀 것은 '과학발전의 과정', '삶을 대하는 태도',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 등에 관한 것들이다.

 '과학발전의 과정'에 대하여 예전부터 갖고 있던 불만은 '우리나라는 왜 자연과학에 투자하지 않는가'였다. 전부 눈앞의 이익에만 관심을 두고 자연과학의 발전에는 관심이 없는 실태에 불만을 가졌었다. 하지만 '권력-연구-자원'의 선순환을 보고 난 후 현 실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항상 강대국 사이에서 생존을 걱정해온 역사이다. 그 상황에서 풍족하지 않은 자원을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자연과학에 무작정 투자를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삶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나는 성공/이상을 추구해왔고 지금도 추구하고 있긴 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과거에 공식을 많이 찾아다녔다. 하지만 '과학혁명'의 등장을 보면 과학혁명을 이끈 유럽의 학자들은 공식을 찾지 않았다. 결과('언젠간 성공할 것이란 기대'와 같은 것들)에 대한 것들을 신경쓰기보단 본인의 적성/스타일대로 충실하게 살았을 뿐이다. 그리고 주변 상황과 여러 운들이 합쳐져 그들을 과학혁명으로 이끌었다. 결과(성공)를 위해서 현재를 가혹할 정도로 채찍질하고 원치도 않는 길을 노력이랍시고 꾸역꾸역 가는 것보다는 '평생 추구하다가 실패해서 죽어도 후회하지 않을 길'을 찾고 이를 위해 하루하루 내 스타일대로 열심히 살다보면 실패하고 죽어도 삶에 후회가 없을 것이고, 주변 환경과 운에 의해 성공하면 감사한 것이다.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인간'에 관해서는 많이 놀란 부분이 있다. 생명공학을 비롯한 많은 분야가 이렇게까지 발전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 가지 추측한 것은, 이미 인간은 신의 영역에 어느정도 도달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피엔스의 보존을 위해 그 수준과 속력을 조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예가 '핵폭탄'이다. 이미 인간은 무기의 분야에서 스스로를 멸종시킬 수준까지 발전했다. 그리고 이를 사용도 했다. 그 과정에서 '기술 발전의 끝'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아마 생명공학 분야는 이미 도달했지만, 강제로 제어하고 있는 중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보고, 인공지능 분야는 그 단계까지 도달하는 순간 제어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인간은 스스로를 멸종시킬 기술은 절대 허용하지 않는다.'이다. 이 때문에 요즘 들려오는 AGI(일반 인공지능)에 대한 걱정들도 조금은 가볍게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말 알차고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기존의 인식을 깨거나 강화시켜주는 '업그레이드'의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어 좋았다. 나중에 다시 읽어보면 또 다른 것들이 보일 것 같다.